대곡리 한실마을, 마을을 삼켜버린 사연호(湖)

글 이민정, 사진 이민정, 성경식, 손방수, 신선희 / 기사승인 : 2022-01-17 0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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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울산-울산365경

울산 언양읍 대곡리는 반구마을과 한실마을로 구성돼 있다. 두 마을을 모두 합해도 50가구가 채 안 되는데, 주민 수도 반구마을이 더 많고 관광객들도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반구마을을 주로 찾는다. 고려의 충신이었던 포은 정몽주가 언양에 유배됐을 때 그를 흠모하던 전국의 학자들이 그를 찾아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후 한실마을은 학자들의 순례지로서 명성을 높였고, 벼슬에서 물러난 이들이나 학문을 좇는 학자들이 서당을 운영하는 교육의 전당이 됐다. 필자의 고조부도 한실마을에서 서당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가보(家寶)인 고조부의 수필집에는 반구대를 주제로 한 한시(漢詩)도 몇 편 있다.

 


▲ 반구마을에서 한실마을로 넘어가는 산길. ⓒ이민정

 

 

▲ 문명을 짊어진 산간벽지의 전봇대. ⓒ이민정

 

▲ 결혼 후 한실마을에서 평생 살아온, 그러나 한실마을을 벗어나고 싶은 촌부. ⓒ이민정

 

▲ 집에만 있으면 죽을 것 같다며 외로운 마을길을 산책하는 촌부의 뒷모습. ⓒ이민정

 

▲ 겨울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사연호숫가. ⓒ이민정

 

▲ 출입금지 된 곳에 버려진 폐타이어. ⓒ이민정

 

▲ 한실에서 태어나 자라고, 외지로 나갔다가 은퇴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박성철 씨. ⓒ이민정

지금은 한실마을에서 실제 거주하는 주민 수가 20여 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원래는 수백 명이 살던 제법 큰 마을이었다. 1965년 울산의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사연댐이 만들어졌고, 댐으로 물길이 막히면서 사연호(湖)가 형성됐다. 현재는 공업용수뿐만 아니라 생활용수도 공급하고 있다. 한실마을의 집성촌과 사연댐이 있는 반연리의 세연동마을, 아랫옹태마을, 태기리의 윗옹태마을 등이 이 사연호에 잠기면서 주민 대부분이 한실마을을 떠났다. 반구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손남주 씨에 따르면, 마을이 수장(水葬)된 뒤 집안에 있던 온갖 쓰레기와 변소(便所)의 오물들이 둥둥 뜨면서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난리법석이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은 사연호를 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 이재권 이장댁의 출입문 앞에서 바라본 한실마을 전경. ⓒ성경식

 

 

▲ 비닐천막 안으로 보이는 정성스러운 소품들. ⓒ성경식

 

▲ 얼기설기 낡은 대나무 담장. ⓒ성경식

 

▲ 시간이 만들어 낸 오브제. ⓒ성경식

 

▲ 사연호에서 바라본 한실마을. ⓒ성경식

 

▲ 죽었어도 꽃. ⓒ성경식

필자가 처음 한실마을을 찾았던 것은 2019년 4월 중순이었다. 저예산 극영화를 준비하던 중 로케이션 장소로 부친께 소개받은 반구대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원주민 몇 분의 도움을 받아 선대(先代)가 살았던 한실마을까지 가보게 됐는데, 촬영지로 최적이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했다. 헌팅차 몇 번 방문하며 콘티를 준비하던 중 코로나19로 촬영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 멋진 광경에 대한 아쉬움으로 대곡리를 계속 찾았다.


2020년 9월부터 반구대에서 부모 대(代)부터 민물어업권 분쟁 중인 어느 부부를 취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대곡리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2월 초 촬영을 마무리하던 당시는 반구대암각화의 명승 지정과 유네스코 등재 문제로 대곡리가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전임 이장이 2년씩 3회를 연임해 마을은 새로운 이장을 선출해야 했다. 마지막 촬영으로 12월 말 동네 주민이 모두 모인 자리에 촬영을 나갔다. 부부의 이야기에는 개인과 관(官), 지역사회, 가족 간 문제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연이 있었는데, 마침 이장 선거는 이 내용과도 연관이 있었다. 새로 선출된 이재권 이장과 마을주민들은 대곡리 주민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제안했고, 국보(國寶)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장은 주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일자리 마련에 1년간 공을 들였고, 작년 12월부터 70세 미만의 주민 20여 명은 주차관리와 문화해설자 등으로 적지 않은 급여를 받으며 노동을 시작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한실마을을 찾았던 지난 6일 정오 무렵, 80대 노인 예닐곱 명만 집 안에 있다고 들었을 뿐 이장댁의 강아지 두 마리 외에 땅에 발붙인 생명체를 볼 수 없었다. 산간벽지의 겨울은 스산했고, 칼바람이 무척 매서웠다. 차가운 날씨에 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둥글둥글한 산은 나뭇가지가 질서 있는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고, 겨울 가뭄으로 사연호는 맨바닥을 상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쪽은 살짝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물이 빠져 있었다.

 


▲ 다육이 화분. ⓒ손방수

 

 

▲ 다육이 화분. ⓒ손방수

 

▲ 다육이 마을. ⓒ손방수

 

▲ 바위틈 다육이. ⓒ손방수

마을은 몇 집씩 널찍널찍하게 흩어져 있어 황량했다. 신축된 집이 아니면 대부분 담장이 없었다. 있어도 여기까지는 우리 집임을 표시하는 정도의 낡은 대나무 몇 개를 엮은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빈 하늘 공간을 채워주는 매의 날갯짓과 나뭇가지에 걸린 소방헬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문명을 짊어진 전봇대가 위태롭고 갈대숲은 을씨년스러웠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철조망은 태양을 액자처럼 품었고, 서늘한 태양은 사연호 위로 눈부신 은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말라버린 사연호 바닥은 메마른 채 드러났고, 그 위에는 금방 썩어 없어질 자연의 부산물 외에도 폐타이어나 신발, 깨진 막걸리병 등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처음 한실마을을 찾았던 2019년에는 없었던 연두색 펜스가 최근 조성됐다. 13일 촬영지였던 천전리도 인공 느낌이 물씬한 연두색 펜스가 시야 이곳저곳을 가로질러 거슬렸다. 중단된 영화가 다시 들어간다 해도 이제는 한실마을에서 촬영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화룡점정. ⓒ신선희

 

 

▲ 겨울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사연호숫가의 사람 흔적. ⓒ신선희

 

▲ 태양을 품은 액자. ⓒ신선희

 

▲ 고즈넉한 사연호 전경. ⓒ신선희

 

▲ 마른 가지에 열린 소방헬기. ⓒ신선희

 

▲ 사연호 주변의 갈대 군락지. ⓒ신선희

사연호 쪽으로 가는 길에 집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숨이라도 쉬려고 밖에 나왔다는 촌부(村婦)를 만났다. 대곡리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한 때는 이미 모든 주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사람 얼굴 구분 잘 못하는 필자는 얼른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어른은 촬영하던 사람 아니냐며 반갑게 인사했다. 말동무가 필요했는지 다리와 허리가 아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도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릴 적 시집와서 평생을 살았던 이 동네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사진을 출력해서 종종 놀러오겠다는 약속에 활짝 웃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카메라에 담았다. 대곡리를 벗어나며 신설된 공공주차장에서 박성철 씨를 만났다. 한실에서 태어나 자라고, 외지로 일하러 나갔다가 은퇴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그의 유쾌한 모습을 담았다. 다시 일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한동안 주민들 간 신경전이 첨예했는데 일자리를 얻고부터는 마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고 한다. 촬영을 철수하고 돌아오는 작가들의 마음도 훈훈했다.

글 이민정, 사진 이민정, 성경식, 손방수, 신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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