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아리랑과 애수의 소야곡

울산저널 / 기사승인 : 2020-03-25 08:17:40
  • -
  • +
  • 인쇄
음악과 여행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말한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이 말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 이후 다시금 밀양을 생각하게 합니다. 밀양 아리랑으로만 알고 있던 경남 내륙의 밀양이 밀양 송전탑 사건으로 유명해졌고 그 전에는 얼음골과 호박소, 사명대사 표충비각 등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밀양을 대표하는 영남루에서 밀양 아리랑 민요가 흘러나오지 않고 트로트 가요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표적인 친일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하고 친일 가수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입니다. 곡 자체야 아름다운 멜로디와 영롱한 음색의 가창으로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혈서지원’등을 작곡해 친일 활동을 한 박시춘의 흔적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흉상을 세우고 생가를 복원하고 노래비를 세워 지역 인물 홍보에만 급급합니다. 친일 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은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고 있다”라는 문구 정도로 구색만 갖추고 있습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1937년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상처의 붉은 피로써/ 보내신 글월인가/ 한 자 한 맘 맺힌 뜻을/ 울면서 쓰셨는가/ 결사대로 가시던 밤/ 결사대로 가시던 밤/ 이 편지를 쓰셨네(1943년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 작곡가 박시춘 흉상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 정거장’, ‘전우여 잘 자라’, ‘낭랑 십팔세’, ‘굳세어라 금순아’ 등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어 우리 국민의 심정을 녹인 재능 있는 작곡가가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밀어 넣는 곡을 작곡하고 사과나 반성도 없이 대중가요에 남긴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기념관까지 지어져 추앙받으려고 하는 현실입니다. 해방 후 친일파가 득세하고 친일행위를 단죄하지 못한 역사가 예술계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엔카의 번역 번안 노래들로 시작한 트로트(Trot)는 2박자 계통의 노래로 뽕짝이라고도 불리며 요나누키, 미야코부시 음계와 남도 민요의 영향을 받아 우리 삶에 녹아들었습니다.


영남루 경내에는 아랑의 전설이 깃든 아랑각, 단군과 역대 개국시조를 모신 천진궁이 있으며 밀성대군 단소 등 다양한 성격의 건물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1923년 세워진 밀성대군지단(박혁거세 30대손이라고 전함)은 왜색풍의 비각으로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생경함이 느껴집니다.


의열단 김원봉, 윤세주를 필두로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미리내,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행색을 한 정치깡패 박춘금(일본 제국의회 중의원)의 호화 묘소가 밀양성당 뒤쪽에 있는 미르벌, 밀성, 추화 모두 밀양의 옛 이름으로 앞으로 용틀임이 기대됩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박시춘 옛집에 세운 안내판


독립군 아리랑, 광복군 아리랑으로 불리면서 일제의 만주 아리랑, 애국 아리랑에 대항하고 중공군의 빨치산 아리랑, 신밀양 아리랑(노동가), 통일 아리랑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는 민요의 특성을 살려 세계화에 어울리는 또 다른 아리랑을 기대합니다.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등학교 교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