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생일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03-26 07: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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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생일 한참 전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광고해뒀다. 받고 싶은 선물은 별자리시계다. 무려 33가지 기능이 들어있다. 별자리시계를 받으면 티아라폰은 동생에게 물려줄 거다. 엄마가 별자리시계가 비싸다는데 안 사주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그럼 할머니한테 사달라고 해야지. 생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달력을 본다. 이제 다음 주면 내 생일이다. 기다리기 힘들다. 


잘 준비를 다했을 때 초인종이 울리고 문 앞에 툭 소리가 들렸다. 순간 아빠가 당황하며 엄마를 본다. 엄마도 당황한 눈치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 선물이 왔구나! 생일보다 선물이 먼저 왔다. 아빠가 둘러대는 걸 보니 더 확신이 간다. 내가 뜯겠다고 우겼다. 상자 안에 있던 별자리시계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아빠는 평소엔 초인종 안 누르고 가시더니 오늘은 어째 눌렀을까 이상하게 여겼다. 센스 있는 택배 아저씨 덕분에 나는 별자리시계를 차고 잤다. 어서 아침이 돼 별자리시계를 해보고 싶다. 


엄마와 동생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일어나서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얼른 별자리시계를 켜고 마음껏 눌러봤다. 별로 안 가지고 놀았는데 벌써 충전하라고 뜬다. 이건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기로 한다던데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웠다. 엄마가 눈도 안 뜨고 휴대폰 충전기가 어디에 있는지 웅얼웅얼 말한다. 나는 의자를 끌어와 위에 있는 충전기를 꺼냈다. 그런데 별자리시계에 꽂히지 않는다. 불안하다. 엄마를 다시 깨우러 갔다. 동생은 내 소리에 깼고 엄마가 부스스 일어났다. 엄마가 해봐도 연결이 안 된다. 엄마는 아빠 오시면 해보자는 김빠지는 소리만 한다. 아빠 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동생은 어린이집에 갔고 엄마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엄마는 공부한다며 또 두꺼운 책에 줄을 긋고 있다. 나는 만화책을 펼쳤다. 그런데 하필 주인공이 라면을 먹고 있다. 엄마가 생일에 해준다 했는데 오늘 점심으로 라면이 무척 먹고 싶다. 엄마한테 라면 해달라고 했더니 생일에 못 먹어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온다. 간절히 라면을 원한다. 엄마는 당겨서 해주는 거라고 라면을 끓여줬다. 역시 라면이 제일 맛있다. 그래도 생일까지 기다릴 걸 그랬나? 선물도 라면도 미리 받았다고 생일에는 케이크만 하기로 했다. 여덟 살이니까 선물도 여덟 개 받고 싶은데 다섯 개밖에 못 받았다. 3월 19일은 내 생일이라고 더 열심히 말하고 다녀야겠다. 생일은 뭐니 뭐니 해도 선물이 최고다.


드디어 생일이다. 엄마가 오늘만큼은 공부를 접고 내가 하고 싶은 걸 같이 하기로 했다. 먼저 스케치북에 라푼젤을 그려달라고 했다. 엄마가 그리는 걸 옆에서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완성된 라푼젤 밑에 생일 편지를 적어달라고 했다. 엄마는 큼직한 글씨로 축하와 사랑을 가득 담아 편지를 써줬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그리는 걸 옆에서 보고 있어 달라고 했다. 엄마는 조금 보다가 빨래 널고 오겠다며 방에서 나갔다. 다 그리고 나서 엄마한테 보여줬다. 동생이 있어서 잘 하지 못했던 글라스데코를 꺼내서 했다. 나는 꾹꾹 짜서 강아지를 그렸다. 다 마르면 놀이방 창문에 붙일 생각이다. 


오늘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바지락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엄마랑 데이트하는 기분이다. 식당에 도착했다. 엄마 한 그릇, 나 한 그릇을 시켰다. 엄마가 남을 거 같다 했는데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이제 동생 데리러 갈 시간이다. 어린이집 선생님한테도 오늘 내 생일이라고 말해야지. 엄마랑 데이트 아주 좋았다. 어린이날도 기다려진다. 선물 받는 날이 두 번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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