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서 나무 죽이기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7-03 07: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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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이야기
▲ 큰 나무를 죽이는 일도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나무를 위한다고 주변에 쌓아둔 잔디로부터 버섯균이 자라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동물은 자신이 위급한 상황이면 그곳을 벗어나 도망가면 된다. 하지만 식물은 그리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움직이는 동물을 보고 흔히 동물이 더 민감한 존재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움직이는 것이 눈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래전에 나온 BBC방송의 다큐멘터리는 식물이 단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시간 체감 차이는 있지만 덩굴손이 허공을 헤집어 끊임없이 탐색하는 존재임을 보여주었다. 뿌리를 싸 들고 움직일 수는 없기에 주변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 혹 ‘더 민감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학교에 심어 놓은 나무들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사람 위주로 생각하고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조경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아주 강하다. 어디를 가든 조경 연출이 비슷하고 자연스럽지 않은데도 우리가 봐온 것이 다 그런 모습이니 무한 반복한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배치는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학교 공간 디자인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유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나무를 심고 나머지 공간에 잔디를 심는다. 직선으로 된 건물 앞에는 똑같은 크기 같은 종의 나무를 일렬로 심는다. 또 생울타리마저도 같은 높이의 수평으로 정기적으로 자른다. 이런 조경방식이 어디로 왔을까 생각해보면 짐작하는 대로 과거 일본방식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섬나라이고 태풍의 경로인 경우가 많아 왜소하게 다듬는 분재형 조경이 발달했다. 지금도 일본이 이런 방식으로 조경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렬로 심긴 분재형 나무들과 각을 잡아 수평으로 자른 생울타리는 전체주의 문화가 물씬 넘친다.


‘조금이라도 튀어나오는 것은 잘라버리겠다.’ 작위적인 수평은 자연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나무들과 서로 다른 키의 나무가 서로 어울려 사는 곳이 숲이다. 우리 교육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좀 더 개성 있는 존재를 길러내겠다고 하는데 조경 모습은 군대처럼 직선의 질서와 획일화 분위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기는 하다. 치자 울타리를 수평이 아닌 둥글게, 그리고 부드럽게 올라갔다가 부드럽게 내려오는 것을 반복하는 리듬감을 갖도록 만들어보길 권해봤다. 수고로울 것이고 만드는 데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미적, 조형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교육요소이기에 애써볼 만한 일이다.

 
유심히 관찰하지만 나무 주변에 잔디를 심어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연숲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낙엽이 쌓일 곳이 없다. 나무는 잎을 떨구기 전, 대부분 영향분을 회수하기도 하지만 잎을 뿌리로 떨궈 재흡수하면서 살아간다. 잔디를 심어 놓으면 자기가 떨군 잎이라도 그 혜택을 보기 힘들다. 게다가 잔디 위에 퇴비를 줘야 하니 효과를 보기는 더 힘들다.


또 하나는 잔디가 갖는 강한 조밀성과 영양분 쟁탈전에 있다. 나무가 아무리 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뿌리는 지표면 20~30센티미터 안에 다 들어있다. 잔디 뿌리는 같은 위치에서 그 영양분을 먼저 다 빨아 먹어 버린다. 결국 나무는 영양분이 모자라 잎이 작아지거나 곪아가고 나중에는 누렇게 뜬다.


나무는 심기만 하면 잘 자란다는 생각으로 퇴비를 제대로 주지도 않는다. 수도 없이 반복해온 문제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오고 있다. 그냥 그렇게 해오던 것이 관행이기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도 없는 나무들이 빈영양화 상태에 빠져 있다. 건강하고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삐들삐들하게 말라 들어가는 나무들은 학생들에게 나무와 자연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 준다.

 
더 흔하게 나무를 죽이는 일이 있다. 나무를 조금 안다는 사람마저 자른 잔디나 낙엽을 나무곁에 끌어다 쌓는다. 거름이 된다고 생각하고 나무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나무 곁 쌓인 낙엽과 잔디 잔해물로부터 곰팡이가 피고 버섯균이 나무껍질에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균사는 습한 곳을 타고 올라가 나무속으로 침투한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나무껍질 안에는 다 퍼져 있는 경우도 있다. 버섯균이 퍼지면 나무는 서서히 죽게 된다.

나무 주변을 덮은 잔디를 헤집자 그곳으로부터 버섯균이 붙어 올라오고 있었다. 습한 장마철에는 그 속도가 빨라진다. 장마철에는 빨리 걷어내 말리고 살균제를 쳐야 한다. 햇빛을 좋아하고 건조한 조건에서 자라는 소나무나 은행나무의 피해가 크다. ‘나무를 사랑한다’는 무지의 행동이 나무를 죽이게 된다. 나무도 영양분이 부족하고 면역력도 약해진 상태라 습한 곳에 왕성하게 올라오는 버섯균을 막아내지 못한다. 큰 은행나무 끝가지가 벌써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사랑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나뭇가지가 말라 들어가면 도와준다고 가지치기를 하지만 잘린 면에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 죽음을 더 재촉하게 만든다. 사랑한다고, 위한다고 했던 일이 나무를 죽인다. 우리는 상대를 모르면서, 사랑한다면서 서서히 죽게 만든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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