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적 양심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목숨 건 줄다리기를 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류준하 음악애호가 / 기사승인 : 2019-10-16 07: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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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반하다

플루트 8대, 클라리넷 8대, 호른 8대! 아무리 대편성 교향곡이라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악기가 등장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말러도 아니고 브루크너도 아닌데 대체 누가 이런 곡을 쓴 걸까? 주인공은 다름 아닌 쇼스타코비치다. 음악사를 장식하는 족보 있는 러시아 작곡가의 막내격인 그가 네 번째 교향곡에서 음악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야심으로 이 곡을 쓴 것은 아니었는지…

 

▲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35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곡을 완성했지만 초연은 1961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작곡가 자신은 작품의 완성과 동시에 초연을 강력히 원했지만 주변의 간곡한 만류가 있었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으로 야기된 사태가 채 진정되기도 전에 다시 체제에 반하는 형식주의 작품으로 매도될 수도 있었을 네 번째 교향곡이 세상에 알려졌더라면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다섯 번째 교향곡과 다른 나머지 작품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 ‘스탈린’, ‘쥬다노프’, ‘프라우다’, ‘형식주의자’ 등등의 단어들이 이 곡과 함께 떠오른다. 서슬 퍼런 스탈린의 철권통치 하였지만 쇼스타코비츠는 그것이 자신의 음악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냉정하게 보면 교향곡 4번이 문제였다기보다는 먼저 발표된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이 작곡가의 발목을 잡았다.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을 연주하는 대형 오케스트라


제정 러시아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풍자한 니콜라이 레스코프(1831~1895)의 소설에 바탕을 둔 이 오페라는 스탈린에 의해 체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로 매도되면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작곡가를 내몰았다. ‘당국의 비판에 대한 예술가의 답변’이란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작곡된 교향곡 5번 덕택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상당부분 굴절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스탈린이 아니었더라도 마르크스와 레닌을 존경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회색의 암울한 음빛깔은 그의 머릿속 사상과 잘 어울렸다. 여기에 더해 조소와 풍자 같은 음악의 느낌들은 단지 그 사상 말고도, 작곡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을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간 독재자를 향한 분노와 고통의 표현은 아니었는지…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자신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는 것은 당시의 위중했던 상황을 오판한 쇼스타코비치의 치명적인 실수였을 수도 있다. 


“마주르카에 담긴 쇼팽의 멜로디가 적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깨달았더라면 러시아 황제는 틀림없이 이 음악을 금지시켜야 했다. 쇼팽의 마주르카는 집 앞 화단에 숨겨진 권총과도 같다”고 한 슈만의 지적에서 보듯이 독재자들에게 음악가는 최우선적인 제거 대상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진즉 이 점을 인식하고 더 신중하게 작품 활동을 했어야 했다.

 

▲ 오묘한 음색의 악기 첼레스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은 전통적인 4악장 형식과는 달리 3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2악장과 3악장, 또는 3악장과 4악장이 합쳐진 형태다. 이렇게 악장이 하나 줄어들었다고 해도 전체의 길이가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이 곡에는 앞에서 언급한 조소와 풍자 외에도 고독과 우수 그리고 작곡가가 평소 존경했던 차이코프스키와 말러의 그림자도 엿보이는 등 다양한 드라마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곡의 피날레 부분에는 망중한을 떠올리는 아련한 선율이 긴 호흡으로 흐르는데, 첼레스타라는 악기의 영롱하지만 다소 기름기가 빠진 듯한 특유의 음색과 어울려 인상적이다 못해 강렬하기까지 하다. 다른 곡의 피날레에도 작곡가가 종종 사용하는 첼레스타는 역설적이라 느낄 수도 있는 묘한 메시지를 전한다.
예술가의 양심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목숨을 건 줄다리기를 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근대사의 한 페이지나 다름없다. 


류준하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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