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을까

조숙 시인 / 기사승인 : 2019-10-31 0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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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글을 쓰고 읽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써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즐겼는데 친구들도 그런 친구들을 사귀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즐겨했는데, 누군가의 생각을 따라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드러내려고 했다.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 평론가의 생각을 따라하거나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말을 하면 자신의 생각이 없는 친구로 여겨졌다. 글을 쓸 때도 이미 누군가 표현했던 것을 따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글을 쓰고, 그것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생각을 교류하면서 친구와 사귀었다. 


글을 쓸 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쓰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했다. 일기였다. 매일 쓰는 일기는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았다. 정돈되지 않는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감정을 정리하고, 막혀있던 생각을 뚫었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창고처럼 마음속은 그날에 일어났던 일들로 뒤엉켜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찌그러지거나 습기 찬 감정들이었다. 감정과 생각은 생물이라서 가만히 찌그러져있는 법이 없었다. 정리 안 된 내면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사건을 찌그러지게 받아들이고 찌그러진 언어를 뱉어내게 했다. 그래서 매일 백열전구가 켜진 방에 앉아서 그날 생긴 감정을 꺼내어 거풍을 하고, 반듯하게 펴서 정리하여 놓았다. 그 시간은 몇 십 년 동안 이어져 왔다. 잠시 동안은 멈춘 적이 있었는데 형사들이 학생들 집을 뒤지고 가짜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내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세상이 살벌해서 일기를 멈추었다. 일기를 쓰지 못하던 시절에는 빈껍데기 같았다. 스스로에게 하던 말이나,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감정을 정리하던 시간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렸다. 세상을 향해 돌을 던졌다. 칼날처럼 글을 휘둘렀다. 히틀러처럼 사람들을 선동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객관적인 시선을 키우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두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의 운전으로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되면 창문을 내리고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서로 교행해야 하는 좁은 골목길에서 자신이 먼저 가야한다고 차머리부터 집어넣고 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실패는 뼈아프고, 다른 사람의 실패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 뿐이라고 무감각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패가 준 아픔을, 그 감정을, 그 고통을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진정한 위로를 해 줄 수 있다. 섣부른 위로나 과장된 위로로 인해서 고통을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참 시인이 되기 위해 응모를 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시절, 낙방한 감정을 과장되게 위로하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있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어야 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떨어져 죽지 않는다고 욕을 먹은 것처럼 느꼈다. 아마도 그 전화를 건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꺼내어 거풍을 하고 실패로 인해 구겨진 감정을 정리해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생물이다. 제대로 키워놓지 않으면 세상을 응대할 때 제멋대로 군다. 


글을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직업이 되었다. 여전히 일기를 쓰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과 자신의 생각을 나눈다. 인간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다운 것은 매력적이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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