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연극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토마토 소극장 손동택 대표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20-02-06 07: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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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극을 보고 감동을 받아 연극의 길로 접어든 계기기 됐다. 앞에 있는 것은 직접 만든 인형극 소품이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우리 울산저널 같은 건물 바로 아래층을 쓰는 토마토 소극장, 간간히 단체로 어린이 손님들이 올 때면 조용하던 건물에 갑자기 활력이 넘친다. 가깝지만 멀게 만 느껴진 연기와 연극의 세상을 손동택 대표를 통해 들여다 봤다.

1. 언제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가졌나?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그림을 배웠는데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 몰래 학원을 다녔다. 아버지는 ‘초상화 그리는 환쟁이가 되려고 하나’하며 그림 그리는 일을 마뜩찮아 했다. 미대에 진학했지만 집안 사정이 달라졌다. 이모들한테도 ‘네가 아버지 등골 다 파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대학을 2년 다니다가 군대에 갔다. 졸업하고 연극에 미술배경 그려주는 알바를 했다. 우연히 춘천 인형극제를 따라 갔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인형극단인데 어둠 속에서 줄로 인형을 조작하더라. 아주 신기하기도 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런 걸 하면 아주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극장 알바를 하면서 연기를 배우는 계기가 됐다.

2. 연극을 배우는 과정은 어땠나?
처음엔 소극장 인형극을 하게 됐는데 낮에는 어린이극을, 밤에는 어른 대상으로 연극을 했다. 연극을 처음 해보니 관객으로 편하게 관람하는 것과 실제 배우로서의 삶은 너무 낯설고 다르더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 힘들었다. 가르치는 선생이 한 시간 붙잡고 연습을 시켰다. 내가 아닌 사람이 돼 무대에 서서 대사하는 걸 연습했는데 체계적인 전공자도 아니고 연습장으로 나가는 것이 생지옥이더라. 같이 했던 여 단원은 일주일 내내 울었다.
공업탑 소극장을 새로 지어 시작했다. 오전에는 어린이극을, 저녁에는 성인극 연출을 동시에 하면서 무대미술을 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 감각이 좋다며 연출을 제안 받았다. 영화로 치면 감독이고 무대 위에 배우들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무대감독을 같이 맡은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

3. 그 뒤 과정은?
공업탑에서 2007년 1월까지 하다가 단원들과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 여기서 2007년 1월에 개관했다. 단원들이 4명 정도였다. 공사비를 아낄 요량으로 페인트칠하고 전기공사를 직접 했다. 처음에는 100석 규모에서 2년 정도 하다가 사무실을 따로 빼고 공연장이 넓어지게 됐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어린이 500명 정도만 받을 정도로 어려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니까 기회가 오더라.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제주도에서 연락이 왔다. 어른들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식 개선 연극을 하는 건데 1년에 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갔다. 트럭을 배에 실어 갔는데 태풍 때문에 공연을 못 한 적이 있어 그만뒀다. 하지만 제주도로 다니면서 단원들도 힘을 많이 얻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어린이 연극 위주로 했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연극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012년에는 대상을 넓혀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 연극을 했다. 그 뒤 시청 여성복지국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어린이 흡연 예방 연극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도 공연하고 있다. 그 뒤 청소년복지센터 학교폭력 예방 연극을 의뢰 받았는데 너무 저예산이었다. 고민하다가 한번 해보자,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시험공연 대여섯 번을 했는데 시나 지자체 반응이 좋았다. 그 뒤 사업비가 많이 늘었다. 학교로 직접 찾아가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 공연했다. 울산 중,고등학교 거의 다 돌아가며 공연했다. 문화예술 거리 만들면서 임대료를 월 30만 원 지원받았다. 그 당시에는 작은 것은 30만 원 정도로 구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었다. 그 당시는 괜찮았다. 3년 지원 받고 재지원 24만 원 2년 받고는 지원이 끊어졌다. 임대료는 다시 새로 들어온 단체에 지원한다.

4. 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기라는 것은 감정조절을 잘하는 것이다. 그걸 연습하고 단원 간 관계가 잘 풀어져야 배우 연기가 관객에게도 잘 전달된다.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돼 기쁘다, 슬프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연출자가 배우와 감정적인 관계를 못 풀면 그것이 관객에게 간다. 배우, 연출, 스텝과의 관계, 또 가상의 사람들 관계도 풀어내야 한다.
감정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떤 친구들은 자기 성격은 아주 명랑해서 연기를 잘 할 거다 그러는데 그런 친구들이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연기에 서툰 경우가 많다. 차분히 감정이 가라 앉아 있는 친구들이 감정조절을 잘 하고 자기조절력이 높다. 연출만 할 때는 그런 관계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 친구를 상처를 주더라도 공연 작품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친구가 나가면 또 다른 친구가 다른 애를 데리고 오겠지 했지만 지금은 직접 운영을 하니 작품을 만들 때도 조심스럽다. 힘들다고 나가버리면 그런 문제도 내가 해결 해냐 되니까. 예전에 작업했던 친구들이 와서 보고는 “많이 바뀌었네요”한다.

5. 성인 대상 연극 시장은 어떤가?
한 번은 성인 대상으로 연극을 만들어 공연했다. 발품을 팔아 전단을 나눠주고 했는데 관객을 모으는 데 진땀을 뺐다. 무료 티켓을 나눠준 적도 있었지만 관객이 안 오더라. 역부족으로 저절로 포기 아닌 포기가 되더라. 그래서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 연극만 하게 됐다. 또 어린이들도 대부분 주말이면 울산을 빠져나가는 식으로 밖에서 소비하더라. 그래서 연극을 원래는 토. 일요일 이틀 동안 하다가 이제는 토요일 하루로 축소했다. 성인 대상으로 하는 연극을 작년에야 겨우 부활시켰다.
작년에 성인들 대상으로 처음에는 인형극 수업을 했는데 어린이용 인형극 수업을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제한을 두지 않았다. 50대도 한 분 있었는데 포기를 하더라. 3개월 과정으로 주2회 했는데, 기존 방식처럼 연기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연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3개월 동안 자기들끼리 장면을 만들어 직접 발표를 하는 식으로 했다.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더라.
원래 내부 발표용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공연장에 아는 사람 두 사람 정도씩만 데리고 오자, 그렇게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좌석이 다 차는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같이 한 사람들 평가를 들어보면 ‘자기도 모르는 자기’를 발견했다고 하더라.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스트레스 안 받고 배우러 오는 길이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인들도 평소에 못 보던 모습을 봤다고 평가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반성을 많이 했다. 그 전에는 스트레스를 주고받으면서 작업을 했는데 스스로 막 놀다 가더라. 지금까지 수업은 뭔가 주입을 하고 단원들에게 특정 방법을 강요하지 않았나?
조금 더 자연스레 배우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3개월 심화과정을 배워 공연을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공연을 목적으로 한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 개설에 가장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은 사람 모으는 것이다. 마감 전날까지 서너 명밖에 모이지 않았는데 마감 날 저녁에 주변에 아는 사람들을 막 데려와 겨우 준비가 됐다. 폐강될 것 같아서 주변 사람을 끌어들인 것이다. 수업 진행에서 제일 힘든 것은 무대에서 연기하는 ‘나 아닌 나’가 보이기도 하고 그 나를 보는 동료들의 시선, 관객들 시선, 선생님 시선 등 온갖 시선들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게 제일 힘든 것 같더라.

6. 노인 대상으로도 연극 지도를 하나?
10년이 넘었는데 북구 노인복지관에서 인형극을 지도했다. 인형을 직접 깎아서 인형극을 해봤다. 어르신들은 모집하면 사람이 잘 모이지 않더라. 접해 본 적이 없으니 낯설고 어려워하더라. 복지사 선생이 권유하면 또 빼다가 그랬다. 초창기에는 인형을 사서 했다. 내가 도와줄 테니 직접 만들어 해보자고 달랬다. 그런 인형이 더 순수하고 관객에게 마음 전달이 더 잘 될 거라고 설득했다. 1년 정도 프로그램인데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칼로 직접 깎고 본드로 붙이고 사포로 문질러 다 만들어 놓으니 뭔가 아쉬움이 생기는 것 같았다. 동료가 만들어 놓은 것과 비교도 되고 하니 그 다음 해는 좀 더 잘 만들려고 하고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라.
인형극 연기는 성우처럼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대본을 가지고 스튜디오에서 따로 녹음을 해서 틀어 둔다. 아기들 목소리도 내고 하는데 어르신들의 사투리는 정말 고쳐지지 않더라. 그냥 “사투리에 맞춰 합시다”하면 대사가 술술 나오면서 신나 한다. 녹음한 것을 틀고 노인 분들은 손으로 인형을 조정만 한다. 이제는 부산이나 춘천에서 하는 공연에서 대상도 받고 실력 있는 분들이 됐다. 소문이 나면서 선암호수복지관에서 한다고 요청이 외서 현재 4년 정도 지도하고 있다.
그 뒤 여러 곳에서 요청이 들어와 내가 다 맡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줬다. 시나리오는 어르신 의견을 받아서 직접 썼다. 복지관은 지역 특색을 살린 쇠부리나 그런 것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런 어려운 건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 손자들이 좋아 하는 것 하자고 하더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선악 구조, 호랑이, 늑대 나오고 잡아먹히는 착한 사람이 나오고, 그런 공연에 아이들 반응이 좋으면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한다. “애들이 오늘 좋아 죽을라고 하더라”면서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7. 교육 수단으로서 연극과 문화예술로서 연극은?
처음에는 연극으로 교육 쪽으로는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먼저 좋은 공연과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은 예산도 그렇고 모든 것이 교육에 초점이 맞춰지더라. 처음 수용이 안 되는 것은 ‘연극 영역을 교육 쪽에 뺏기는 것 아니냐’하는 생각이었다. 청소년복지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생각이 바뀌더라.
지금은 발을 맞춰 가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극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걸 포기하고 돈 되는 사업 쪽으로만 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단순히 탓할 수는 없다. 지역에서 버티려면 공연장이 없는 친구들은 지원금에 의지하고 따로 수입이 없으니 그런 길을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지원금은 병원에서 계속 링겔 병 맞는 과정과 같다고 본다. 안 맞으면 안 되는 식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을 잘 만들어 인정받는 단체로 가자고 단원들과 마음먹었다. 일반적으로 지금은 극단이 자체 기획하는 공연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예전보다 발표 작품 수가 훨씬 많이 줄어 들었다. 1년에 한두 편 밖에 지원을 못 받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어린이극은 두 달에 한 편 정도를 만든다. 그렇게 해야 공연도 시리즈 비슷하게 안정적으로 된다. 시립예술단처럼 9시 출근해서 6시까지 일한다. 단체 관람객을 받고 무대에서 연습도 하고, 제작 소품 음향 등도 회의를 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만들어 간다.
섭섭한 것은 1년 내내 연극에 메여 있는데 어르신들은 아동극이라고 하면 조금 다르게 보는 시각이 있다. 문화재단 공모사업도 올라오면 아동극도 좋고 유명한 것이 많아 우리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공모를 넣었는데 소문에 ‘이 단체는 아동극 단체잖아’하면서 서류에서 바로 빼버렸다는 소문이 있더라.

8. 어린이극 수준이 높다는 건 어떤 것인가?
명작동화나 뽀로로 같은 상업적인 스토리가 그런 선입견을 갖게 한 것이 많다. 어린이날 같은 날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동화작가와 결합해서 대본을 쓰고 전문작가가 각색을 해서 나오는데 대본 주제와 소재가 많이 다르다. 대부분 밝거나 잘 안 다루는 부분, 즉 죽음이라든지 혹은 애들끼리 보는 어른들의 세계 같은 거다. 동화 자체를 고르고 대본 자체도 고르고 매니아도 생기고 매진이 되는 연극을 보러 서울로 벤치마킹도 갔다. 현대 동화는 밀도가 있고 대본들을 막 쓰는 게 아니라 철학적인 고민을 담는다. 이런 아동극은 관람 대상만 다를 뿐 어른 연극하고 거의 차이는 없다. 표현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연기를 다르게 하는 것도 아니다.
희망적으로 보는 건 자문회의에 들어갔더니 혜인학교 맞은편에 청소년 위한 공연장 700석 문화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공간에서 공연을 하면 연극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원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하면 보러 와주는 방식을 원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연극이 뭔지를 모르니 우리가 찾아가지만.

9. 단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극단에서 같이 할 단원을 모으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극단에 배우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전공자다. 전공자들은 없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보다가 연기나 연출 같은 걸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고 오는 친구들이 많다. 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니 울산지역에는 관련 과가 없다. 가까운 부산 대구 밖에 없어서 공부를 하게 되면 교수님 따라 작업하게 되고 울산지역을 빠져 나가게 된다. 모집 광고를 내도 배우들이 안 오고 초보 일반인들이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온다. 그런 친구들을 가르쳐 놓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연기는 막연한 기술이 아니라 자기 철학을 가지고 버티면서 나가야 하는데 정체기가 오면 손쉽게 놔 버리더라. 보수 문제도 있고 직업으로 선택해 울산에서 살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서울 가서 영화배우를 꿈꾸고 계단 삼아 거쳐 가는 친구들도 있다. 실제 연극을 배우러 오는 친구들이 “영화배우 하고 싶은데 아직 연기를 잘 하지 못해서...”라는 식으로 말한다. 조연 같은 경우에는 연기 잘 하는 친구가 많이 선택되기도 하니 연극을 영화로 가기 위한 단계로 생각한다. 그런 발판으로 가는 친구는 보통 1년 반 길면 2년 정도 단원으로 활동한다.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라 영화 쪽으로 가거나 생계 때문에 다른 직업을 구한다. 우리도 붙잡고 싶은 친구들이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잘 맞지 않더라. 그런 친구들은 연극의 연을 놓지 못하고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런 친구들이 안정적인 작품을 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데 우리 공간을 임대료가 싼 외곽으로 옮기는 문제도 고민한다. 하지만 어린이 관객들이 걱정도 된다. 적당한 건물을 찾는 것도 어렵다.
단원들은 아동극만 하다 보면 자존감이 조금 떨어진다. 그래서 ‘아동극 말고 시리즈’로 어른을 대상으로 해마다 작품을 하나씩 만들었다. 2018년에는 성인들을 위한 연극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는데 작년에는 못 만들었다. 반응도 좋았는데 그 반응이 좀 길게 가는 게 필요한데 장기공연을 한 달 정도 버티는 뒷심이 부족해지더라. 한 달 공연하고 한 달 준비해 또 한 달 공연하고 하면 성인 고객들도 생길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젊은 친구들이 출연료가 얼마인지를 먼저 물어보니 현실적으로 어렵다. 단원이 바뀌어도 공연 자체는 다시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단원들과 연속성이 떨어진다. 작업하다 끊어지고 하면 결국 가르치는 쪽에서는 힘들다. 같이 해온 단원이 이제 한 명 남았다. 가르치는 쪽에서 안 하면 계속 잊히니까 성인극도 부딪쳐보려고 한다. 아동극이라 배재됐는데 올해도 또 신청했다.  

 

▲ 미술을 전공한 이가 연극 연출을 맡게 되자 무대미술감독을 겸하는 연출자가 됐다. 어려운 극단 생활에 그의 역할 가성비는 높다. ⓒ이동고 기자


10. 본인에게 연극이란 어떤 것인가?
연극이란 한 마디로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 지금까지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작품을 만드는 환경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안 할 수가 없다. 전에는 포기를 할까 다른 사람에게 넘길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단원들도 보고 있고 내 스스로 이걸 놔 버릴 수 없겠더라.
이제는 극단 사무실만 유지하더라도 단원들과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풀려고 한다. 현재는 단원들과 안정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공연장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한다. 연습실만 가지고 공연장에서 직접 공연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 자체 작품을 만드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배우는 자신들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작업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 직접 배우로 들어가서 극단 배우와 연기로 감정을 주고받아야 하니 언제나 교감을 신경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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