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호(紫沙壺) 거듭남의 비밀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0-12-03 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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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보이차(普耳茶)를 마실 때는 분청이나 청자, 백자호를 사용하기보다 자사호(紫沙壺)를 사용한다. 그것은 보이차의 탕색과 차호(茶壺)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할뿐더러 균열 틈으로 붉은 찻물이 배이면 얼룩이 져서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차, 흑차, 보이차 등은 자사호가 제격인 것이다. 자사호를 가만히 보면 참 신기하다. 모든 도자기류는 흙으로 만들어 가마에서 구워 낸다. 그러나 자사는 다르다. 자사(紫沙)라는 광석(돌)을 캐내어서 망치로 깨뜨리고 그것을 곱게 갈아서 채반으로 친다. 다음은 고운 가루의 자사를 물에 넣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1개월 이상 숙성 과정을 거치면 점성이 살아난 숙니(熟泥.진흙)가 되는데 도공들은 이 진흙으로 호(壺)를 빚어 가마에서 3000도의 고열로 구어내면 다시 돌로 거듭나니 돌차호 즉 자사호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제멋대로 생긴 지저분한 돌이 깨어지고 갈아지고 숙성되어져서 고열에 구워지므로 고운 자태의 자사호로 거듭난다. 자사호를 사용할 때마다 거듭남의 신비를 되새기곤 하는데 사람도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이와 같다. 깨어지고 걸러지는 과정과 익어가는 과정 그리고 불로 연단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자사가 내개 주는 교훈은 본래(본향)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돌에서 나와 세월이 지나고 여러 과정을 거쳐 다시 돌로 회귀하는 자사호, 나 또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흙에서 왔기에 본향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사 원석은 중국 장쑤성 이싱(宜興)의 황룡산에서 주로 생산된다. 자사 원석으로 만든 자사호는 명나라 시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입자가 매우 미세해서 다기(茶器)의 세밀한 묘사가 가능하고 철의 성분이 포함돼 있어 두드리면 맑은 쇠 소리가 난다. 또한 열전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차호로는 매우 적합한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자사호를 구입하기 위해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자사호를 점검한다. 좋은 자사는 뜨거운 물을 부으면 스펀지처럼 물을 흡수한다. 나는 자사호에 물을 붓고 뚜껑을 닫은 후에 차호 위에도 물을 조금 붓는다. 자사호를 깨끗이 씻는 의미도 있지만 물이 금방 흡수돼 뽀송한 자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다. 자사 외벽의 물이 다 흡수되는 시간이 대충 1~2분 정도 되는데 차를 따르는 시간하고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자사 외벽의 물이 다 흡수돼 마른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냥 차를 따른다. 그리고 좋은 자사는 수구에서 물이 나오는 모양이 좋아야 하고 깔끔해야 한다. 즉 출수(出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만든 자사호는 출수가 깨끗하고 예쁘다. 뚜껑 또한 잘 맞아야 한다. 뚜껑이 정확하지 않으면 차를 따를 때 찻물이 새고 차상에 떨어진다. 자사호에 차를 따르다 보면 겉모양은 좋아도 제대로 만들지 않아 물이 새고 출수도 안 좋고 엉망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모양도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유명작가의 호를 찾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사호 명인을 국가공예미술대사로 임명해 우대하고 있다. 


20년 전 나는 중국 제일의 자사 명인 국가공예미술대사 주계진(周桂珍) 선생의 환룡삼족호(環龍三足壺)를 우연한 기회에 북경의 한 저잣거리에서 시골 노인이 들고 나온 것을 구입했다. 차를 좋아하는 우리 집에서는 국보인 셈이다. 중국에서는 명인이 만든 자사호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팔리고 있다. 차의 나라답게 중국인은 신분 과시용으로 집안에 진열해 놓고 있는 것이다. 100여 개의 자사호를 소장하고 있는 내게 가장 좋아하는 호(壺)가 무어냐고 묻는 다면 서시호(西施壺)라고 대답한다. 예쁘기도 하지만 사용하기에 편하고 이름이 좋아서다. 중국 4대 미인 중에 하나인 서시(西施)의 젖가슴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처럼 보이차와 자사호의 궁합은 서로를 빛나게 한다. 자사호에 담긴 보이차가 일품인 것처럼 보이차를 담은 자사호는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돌에서 흙으로 흙에서 다시 돌로 거듭나는 자사호. 자사호의 사랑은 쉬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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