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공부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배우는 시간들

송영주 심리상담사/미술치료사 / 기사승인 : 2020-12-03 0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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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쏭샘의 심리로 마음 들여다보기

한 친구가 왔다. 인생 처음으로 이성과의 만남을 경험한 뒤였다. 하지만 그 이성은 그 친구를 자신의 짝이 아닌 그저 친구로서만 대했다. 자신의 첫 만남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은 그 친구는 눈이 보이지 않고, 뇌가 아프고 타는 듯한 느낌이 있다는 증상을 갖고 상담실을 찾았다.


그 친구는 친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누나 둘이 있는 가족의 막내이자 장남이었다. 어린 시절 아들이라는 이유로 친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누나들 또한 공부도 잘하고 자기 자리도 잘 지켰기에 이 친구는 막내로서 자신의 공부와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그렇게 자신의 공부와 자신의 역할을 지키며 자신만의 지도를 퍼즐 맞추듯 잘 살아온 이 친구는 첫 이성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생각한 지도의 퍼즐을 맞출 수 없었다. 이 친구는 혼란과 좌절, 실패감을 느끼게 됐다. 하지만 자기 내면의 실패감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머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공부를 하면서 성취하며 살아온 그 친구는 관계에서의 성취를 이뤄본 적이 없었다. 동성친구와는 게임과 자신들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대화하고 잘 지내왔지만,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대화와 관심사를 공유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이 친구에게 첫 이성관계의 경험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은 인생 최초의 경험이자 좌절과 실패감을 느끼게 했다. 공부를 통한 지식의 배움이 아닌 관계에서의 배움의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면죄부를 받는다. 공부를 다 하면 다른 모든 것이 수용되고 통과된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주어진 공부, 알려주면 하는 수동적인 공부, 시험 답안을 맞춰 점수를 잘 받는 공부에 능숙해진다. 그리고 그 공부의 결과인 시험 점수와 주변의 인정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고, 그 점수와 인정이 없어지는 순간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대학이라는 곳에 가게 되면 공부가 아닌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발달 과정상 만날 수밖에 없게 된다. 관계 속에서는 공부를 통해서 인정받고 사랑만 받았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사람들(동성이든, 이성이든, 선배나 후배든, 교수님이든 다른 많은 사람들 등등) 속에서 실수하고 좌절하면서 배우는 자신의 다른 모습들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수용이나 인정이 아닌 미움과 갈등, 실패의 경험과 모습도 자신의 모습임을 알게 되면서 면역력이 생기고, 긍정적인 자신의 모습과 부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면서 균형을 이루며 사회성을 갖춘 성인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도, 사람도, 삶도 여러 가지 측면이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모습도 여러 가지이며, 대처 방식도 여러 가지임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감정적인 면에서도 성취와 성공, 낙관, 희망뿐만 아니라 좌절과 실패, 허무감, 괴로움과 외로움 그리고 허무함도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이성적, 관계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단단해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인식하고 선택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관계가 아닌 공부로 인정받고 수용받고 사랑받는 환경에서는, 관계 속에서의 경험과 배움이 자라나지 못하게 된다. 관계 속에서의 경험과 배움이 없으면 자신의 여러 모습을 알기 어렵고,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방식과 관계 속에서의 대처 방식, 감정, 정서, 심리 등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지내온 삶에서의 모습만을 자신의 모습으로 알게 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변화하는 삶이 아닌,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이 된다. 또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삶 즉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수용과 사랑을 받기 위한 삶만을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게 되고, 자기 자신의 욕구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잃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게 되면서 어느 순간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지, 이런 삶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다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하고 싶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며, 경험을 통한 배움에서 성취와 좌절을 겪고 면역력이 키워지면서 나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하고 알게 된다. 반면에 관계 속에서의 경험의 부재는 나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관계와 변화에 대한 면역력 저하를 일으킨다. 


이렇듯 삶은 관계 속에서 배워지며, 그 배움은 학교에서 하는 점수를 위한 공부와는 다르다. 어쩌면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를 맞이하며 살고 있는 친구들은 시험 점수는 획득하지 못했지만, 삶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미리 배우며 삶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공부를 해서 점수는 획득하지만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배우지 못하는 친구들은 20대나 20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삶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삶을 공부하는 그 시점에 각자 자신만의 방어 증상과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지만, 삶에서 사람으로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분명히 있으며, 그것을 배우는 시기도 자신만의 시기가 있다. 배움의 순간이 왔을 때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배우고 깨치며 나아가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청명하고 쌉쌀한 겨울날이다.


송영주 심리상담사/미술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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