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언양권의 관문으로 번성했던 삼남읍의 덕천고개를 오르다(1)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 기사승인 : 2020-12-03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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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울산

덕천고개
 

▲ 덕천고개 ⓒ김정수 사진작가


덕천고개는 삼남읍 수남마을에 있는데, 인근 주민들은 ‘수남고개’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고개는 ‘진등[長嶝]’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국도 35호선이 지나간다. ‘진등’은 부로산 서쪽 산줄기가 작괘천을 따라 멀리 신화리 쌍수정마을까지 평지에 길게 이어진 산등성이다.
이 고개의 국도 서쪽에는 일제강점기 직후에 작성한 <조선지지자료>(1911)에 기록돼 있는 ‘덕천역’과 ‘수남주막’이 있었고, 동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자녀들이 다녔던 언양심상소학교와 1946년 1월 8일 개설해 1952년 12월 15일 폐지된 중남초등학교 작천분교가 있었다.

덕천역(德川驛) 터

▲ 덕천역 터 ⓒ김정수 사진작가


덕천역은 삼남읍 교동리 수남마을의 덕천고개 서북쪽에 설치됐던 역참(驛站)이다. 역(驛)은 관원들의 이동 지원, 중앙과 지방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 군사 정보의 신속한 처리, 지방의 생산물을 중앙으로 수송하기 위해 설치했던 교통·통신 시설이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 울산은 양산의 황산역(黃山驛)을 중심으로 밀양·기장·언양~경주·울산·동래 방면의 역로(驛路)인 황산도(黃山道)에 속했다. 이에 속하는 울산 지역의 역으로는 덕천역을 비롯해 잉보역(仍甫驛), 노곡역(奴谷驛), 굴화역(堀火驛), 간곡역(肝谷驛) 등이었다. 이 역은 양산의 위천역(渭川驛), 울산의 굴화역, 경주의 잉보역을 연결했다.
삼남읍은 이 역과 현대의 울산역처럼 예나 지금이나 교통의 요충지다. 이 역이 군사 정보의 신속한 처리 등의 업무를 언양읍성과 부로산봉수대와 함께 해 왔다. 이를 복원해 함께 아우르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수남주막(水南酒幕) 터

▲ 수남주막 터 ⓒ김정수 사진작가



수남주막은 삼남읍 교동리 반구대로 671번지 일대에 있었던 주막이다. 이곳은 국도 35호선이 지나가는 ‘진등’의 고갯마루 서쪽에 있는 공터 일대로 처사(處士) 안상중(安相重)의 산소가 있는데, 이 주막과는 관련이 없다. 본관은 광주(廣州)다. 후손들이 화남정마을에 살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언양군 중남면에 한자로 ‘수남주막’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자료에 주막이 울산광역시 전역에 107곳이 기록돼 있다. 삼남읍에는 이 주막을 비롯해 수정마을의 교동주막(校洞酒幕>, 강당마을의 심천주막(深川酒幕)으로 3곳이 기록돼 있고, 그 위치도 확인돼 있다.
이 주막은 1953년경 폐업하기 직전에 현재 생존해 있는 김 모 씨가 함석집에서 교동주막처럼 간판과 봉놋방 없이 영업했다. 이곳에서 두부를 생산해 판매하고, 술안주로 내놓았다.
이 주막을 덕천역과 함께 복원해 상권의 활력을 잃어가는 덕천고개가 옛 언양권의 관문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다음호 계속)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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