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정자와 누각을 만나는 행복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12-16 06: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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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이야기
안동하회마을은 낙동강이 휘돌아가는 한 가운데 핀 연꽃처럼 자리잡은 마을이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풍경.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새벽 4시 정도에 눈을 떴다. 6시 고속철을 타서 신도청과 연결되는 차편을 보니 동대구에서 7시 버스를 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제 낙동강 걷는 공간에 점차 상류로 올라가자 서울에서 오는 동무들 교통이 서서히 더 편하게 되고 있다. 해뜨기 전 새벽의 냉기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아침을 거른 울산 동무와 같이 경북신도청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몸을 녹이며 다른 동무들을 기다렸다. 다시 낙동강걷기 연결점인 구담마을 시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안동시 구담교를 건너 건너는데 강에는 벌써 멀리서 날아온 오리 떼들이 유영과 자맥질을 한다. 이번에 참가한 동무들은 무려 15명, 날은 추워지고 해는 짧아지고 인원이 많다 보니 대장은 신경을 많이 쓴다. 긴 대열이 앞뒤로 2개 무리로 되었다가 나중에는 4개 무리로 자꾸만 대열이 길어진다. 잠시 쉬면서 뒷무리가 오길 많이 기다려줄 수도 없고 일정은 항상 예상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낮은 산길을 넘어 화천서원으로 간다. 5칸짜리 중앙을 경계로 완전 데칼 코마니 형태의 건물이다. 건물만 바라 봐도 마음의 중심이 잡힌다. 이 곳에서 조금 오르면 안동하회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부용대다. 마을은 낙동강이 휘돌아가는 한 가운데 핀 연꽃처럼 보였다. 보이는 그대로 연화형부수형(蓮花浮水形)이다. 부용대에서 좀 절벽을 끼고 더 내려가면 겸암정사가 나온다. 건물을 감싼 나무들은 아주 오래 묵은 참나무들이라 더욱 반가웠다. 한 때 민박까지 했다고 하는데 개만 요란스럽게 짖는 걸로 주인은 잠시 출타중인 듯하다. 부용대를 내려와 화천서원을 지나 강가로 가면 옥연정사가 나온다. 바로 이곳이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다 치르고 고향으로 내려와 징비록을 편찬한 곳이다. 징비록을 쓰는 마음은 안도와 회한이 교차했을 것이다.

부용대에서 안동하회마을로 바로 건너가는 줄배가 운행하지 않아 택시를 타고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내륙의 기후는 더욱 깊은 맛을 생선에 농익게 했는지 바싹 구운 간고등어는 공기밥을 추가로 주문하게 만들었다. 볼 것 많고 머물고 싶은 곳이 많으니 자꾸 시간은 늘어져 안동하회마을은  그냥 토담벽을 가로질러 지났다. 충효당 건물로 들어서니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돌배나무에 어린이 주먹만 한 배가 여러 개 달렸다. 둘레가 1미터, 높이가 5미터가 넘는 매화나무는 건강한 기운이 넘쳤다. 이 시대의 충(忠)은 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라는 몇 년 전 바로 이곳 해설사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다. 무능한 선조를 도와 나라를 구한 류성룡 정승과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 바로 제대로 된 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병산서원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산길은 이제 색 바랜 감태나무와 참나무 잎들로 수수하고 한적하다. 낙동강이 보이는 좋은 장소에 전망대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산을 내려와 다시 강변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병산이 눈에 들어온다. 퇴적암이 켜켜이 쌓여 융기한 산은 굴곡을 자랑하며 힘찼고 나목들이 능선을 섬세하게 꾸미며 아름다웠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산이다. 이 산이 잘 보이는 곳에 바로 병산서원이 있다. 서원 건물만으로는 이 병산을 바라보기에 아쉬움이 많았을까? 그 앞에 다시 만대루라는 누각을 지었다. 무려 7칸의 널따란 누각의 기둥들은 세월만큼 깊은 주름을 남겼다. 몇 년 째 보수공사 중이라 올라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병산서원에서 나오는 비포장도로 아랫길에는 절벽을 타고 만든 데크길에서 낙동강을 조망하며 걷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걷지 않으면 감상할 수 없는 강 풍경을 이 곳에 4번 째 오고서야 알게 되다니.

우리는 풍산읍 소산마을에 도착했다. 서둘러 안동김씨대종택인 양소당에 들러 목조와 창호, 그리고 하얀 회칠벽이 주는 공간분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았고 높은 청원루는 대칭적인 구조가 주는 안정감을 느꼈다. 마을 입구 삼수정에 올라서니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삼수정은 여러 낙락장송과 큰 느티나무며 숲이 감싸 앉은 야트막한 동산에 앉은 조그만 정자였다. 시간이 늦어 앉아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안동지역 주변에는 기와집이 남아있는 전통마을이 아주 많다. 하지만 더 많은 마을이 안동댐, 임하댐 건설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1976년 안동다목적댐 건설로 와룡, 예안, 도산, 임하, 월곡, 녹전 6개면 2개동(성곡, 상아) 일대 마을 54곳이 물에 잠기고 주민 2만 여명이 고향을 떠났다고 경북기록문화원은 전한다. 당시 수백 년 된 마을 역사와 생활상 등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고 가옥, 문화재 등은 대부분 물속에 가라앉았다. 보지 못한 정자와 누각이 더 많은 것은 아닌지. 하루 만에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옛집과 정자와 누각을 시간에 쫓겨 가며 한꺼번에 본다는 것은 호사였지만 과거 안동지역이 어떤 고장이었는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풍산읍내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 날 필요물품까지 사고 나서 마애리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날이 깜깜했다. 하늘에는 별도 총총히 떠오르고 있었다. 동무들은 밤마실을 다니는 때가 생각난다며 모두 기억 한 자락씩을 끄집어냈는데 같은 고향 동무들처럼 기억들이 비슷했다. 알고 보니 걷기에 같이 다니는 동무들이 대부분 촌놈들이었다. 그날 같이 밤마실을 다녀왔다. 동네 곳곳에 개들이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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