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정치(政治)’를 위하여

김수복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 기사승인 : 2020-12-03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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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고
▲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2

 

<안티고네>는 기원전 441년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상연됐던 작품으로 소포클레스의 대표 비극 가운데 하나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비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는 신화와 관련된 영웅들의 이야기를, 에우리피데스는 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두 비극작가의 중간자적인 성격을 지진다. 그는 신들의 위대함을 말하지만 그의 신들은 인간의 절망과 고통에 대해 침묵한다. <안티고네>에도 이런 특징은 그대로 드러난다.
<안티고네>를 국가 대 개인, 인간의 법과 신의 법, 남성과 여성 또는 페미니즘적인 시각 등 다양한 키워드와 주제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안티고네를 ‘정치적인 입장’의 측면에서 이해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갈등은 안티고네의 오빠, 오이디푸스의 장남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로 시작된다. 폴리네이케스는 동생 에테오클레스에게 추방당한 치욕을 씻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테베를 공격한다. 이 전쟁은 두 형제간 골육상잔의 비극으로 끝나버린다. 이 싸움으로 테베의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시신은 예의를 갖춰 처리하게 하지만,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못하게 한다. 그 당시 죽은 자를 묻어주는 것은 영원한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매장은 반드시 해줘야 하는 불문율, 오래된 관습법, 신의 법이었다. 하지만 크레온은 시민들의 안전과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새들과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무시하고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준다. 이 과정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각자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타자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죽은 자를 묻어주는 일은 신들의 불문율이며, 혈연으로서 그를 사랑하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때가 되기도 전에 죽은 것은 이득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인 크레온이 내린 포고령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그녀는 이스메네가 “오빠를 같이 매장하자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언니가 곤경에 빠져 있으니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을 때도 차갑게 거절한다. 안티고네는 지하 무덤으로 내려가면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신들의 대답이 없을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편 크레온은 아들 하이몬에게 그의 약혼녀인 안티고네가 하계의 신부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말한다. 크레온은 겉으로는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법을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정치적 야심을 가진 독재자의 냄새가 난다. 그는 “도시가 임명한 자가 명령하면 크고 작고 옳고 그르고를 떠나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불복종보다 더 큰 악은 없으며 불복종은 도시를 파괴하고 집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크레온은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고집이 어리석음의 죄를 짓게 하지 말라”는 충고에 대해 이익을 밝히는 예언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예언자가 그의 가족들에 대한 무서운 예언을 하자, 크레온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안티고네 오빠의 시신을 매장해주고, 그녀를 풀어주기 위해 지하 무덤을 찾지만 그의 굴복은 너무 늦어버렸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시신 옆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들, 그 아들의 죽음 소식에 자신의 목숨을 끊은 부인의 시신을 지켜보는 불행을 만나게 된다. 결국 안티고네와 크레온 두 사람은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상연됐던 그리스 비극은 순수한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들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보고, 토론의 장을 펼쳤다고 한다. 아테네의 최고 전성기와 쇠퇴기를 같이 했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시민들이 자신의 <안티고네>를 보고 어떤 말들이 오고가기를 원했을까? 극의 마지막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라는 코로스의 말에서 어떤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


정치는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는 상대방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만 난무하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균형적인 단어는 미사어구에 지나지 않는 시대가 돼버렸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각자의 신념에 함몰돼 타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가족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게 된다. 2500여 년 전의 작품 <안티고네>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곱씹어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고전을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이몬은 그의 아버지 크레온에게 말한다. “겨울철 급류 가에서 굽힐 줄 아는 나무들은 그 가지들을 온전히 보존하지만, 반항하는 나무들은 뿌리째 넘어지고 말지요. 마찬가지로 돛의 아딧줄을 당기기만 하고 늦춰주지 않는 사람은 배와 함께 넘어져 용골을 타고 항해를 계속하게 될 거예요.”


김수복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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