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포드, 그리피스의 몰락, <Broken Blossoms>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1-18 00: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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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고전영화>

1992년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의 <연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파란(波瀾)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베트남을 배경으로 전쟁영화가 아닌 러브스토리라는 점, 신데렐라콤플렉스적(的) 남녀 관계가 가난한 여성이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인이고 부유한 남성이 중국인이라는 점, 뇌쇄적인 여성의 극중 나이가 16세가 채 되지 않은 소녀라는 점, 그리고 가십 중의 하나인, 여성 주인공 제인 마치가 이 영화의 연기를 위해 ‘연습 삼아’ 미리 첫 성경험을 하며 굉장히 많이 울었고, 그 남성이 누구누구다, 라는 것이 마케팅으로 활용됐다는 것이었다.

 

영화 <연인>은 프랑스 여류 소설가 마그리트 뒤라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전쟁의 잔혹성을 성(性)으로 메타포한 영화가 <살로, 소돔의 120일>, <감각의 제국>, <세르비안 필름>이라면 전쟁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슬픔을 성으로 은유한 영화는 <연인>, <색, 계>쯤 된다. 예술이든 학문이든 ‘특허발명’이 아니라 ‘실용신안’이라는 말이 있는데, <연인>이 오마주했거나 원조격인 영화가 미국의 D.W. 그리피스의 1919년작 이다. 흑백무성영화인 이 영화의 국내 제목은 ‘흩어진 꽃잎’, ‘꺾인 꽃’, ‘짓밟힌 꽃’ 등으로 분분한데 공식적으로 ‘흩어진 꽃잎’을 쓴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당시 외래어를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번역 과정에서 통일하지 못한 결과다. 지금은 원어가 주는 원천적 감상(感想)을 위해 원제목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 챙이 루시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

산업혁명 이후 분업시스템을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대표적 사례가 포드자동차다. 분업시스템을 포디즘(Fordism)이라 하는데, 영화계 분업화를 이뤄낸 감독이 그리피스다. 영화사(史)에 깊은 족적을 남긴 <국가의 탄생>(1914)에서 다양한 카메라워킹, 편집기법과 함께 남북전쟁 여파가 남아있던 시절 인종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점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룹 퀸(Queen)이 신(神)을 부정하는 음악으로 비난받자 ‘Jesus’를 남발하고, 유대인인 스필버그가 유대인 주제의 영화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비평의 대상이 됐듯 그리피스도 인종차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본인이 백인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루시가 울면서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얼굴을 만드는 장면

은 그리피스의 대표작인 <국가의 탄생>(1915), <인톨러런스>(1916) 뒤를 잇는 작품으로, 무성영화시대 최고의 디바(Diva)였던 릴리언 기시가 잇따라 출연한다. 릴리언 기시는 도로시 기시와 함께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릴리언 기시의 매력을 찾아내 스크린에서 가장 잘 표현한 감독이 그리피스였다. 카메라 기능과 스토리텔링 기법이 진화하면서 카메라는 배우에게 더 가까이 접근했고, 제작자 카르텔로 종속적 관계였던 배우들은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되면서 스타시스템이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피스는 영화계의 시대적 전환을 무척 잘 활용한 감독이다.

 

▲ 루시 부친이 루시를 때리는 장면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언제나 청교도적 권선징악의 범주 안에 위치한다. 공포영화에서 거칠고 문란한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다거나 웬만하면 선(善)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도 이 문법을 충실하게 따른다. 신의 선과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챙이 살인한 뒤 자살하는 방식은 고행(苦行)하듯 꼬챙이로 자신을 찌르는 형벌에 가깝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주인의 횡포에 ‘벌’을 내린다는 궤변으로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는 것이 루시의 아버지를 죽인 챙이라면, 살인자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 ‘죄’를 내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택한 챙이다.

 

▲ Broken Blossoms 포스터

 

100년 전의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시절,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배우는 1922년의 이월화였고, 중국의 경극에서, 일본의 가부키에서, 서양의 카스트라토에서 여성 역할은 남성 배우가 맡았다. 초창기 미국 영화에는 백인만 등장한다. 흑인은 백인이 얼굴에 검은 분장을 하고, 동양인을 백인이 맡았다.

 

 Broken Blossoms 기사

기념비적인 장면은 아버지가 루시에게 웃으라며 마구 때리자 눈물을 흘리면서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위로 올린다. 이밖에도 책이나 사물의 시점숏, 배우의 극단적인 표정을 클로즈숏으로 연출한 것, 바다 장면은 푸른색으로 챙과 루시의 공간은 분홍으로 연출한 장면이 흥미롭다. 블루와 핑크의 색감은 피카소의 블루시대와 장미시대를 연상시킨다. 컬러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필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 자주 활용됐다. 그리피스는 이 작품 이후 주류에서 멀어지면서 과거의 명성만 겨우 유지했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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